잘못된 원가 정보, 조직까지 뒤흔들다
원가 정보가 부정확하면 기업의 수익성 판단과 전략적 의사결정이 왜곡됩니다. A사 사례처럼 손실 사업 철수, 불필요한 외주 비용 증가, 손실 고객을 우량 고객으로 오인하는 등 재무뿐 아니라 조직문화까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본 글은 재무회계에 의존한 원가 산정의 한계를 짚고, 관리회계 기반의 원가 모델 전환이 왜 필요한지 설명합니다.
겉으로 보기에 경영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고, 우수한 인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에 정체기를 겪는 많은 기업들이 있습니다. 원인은 여러 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습니다. 시장 환경 변화에 대한 미흡한 대응, 경쟁사 대비 차별화된 전략 부재, 혹은 조직 내부의 비효율적인 소통 구조 등이 있을 수 있죠.
하지만 이 글에서는 그 중에서도 경영진의 의사결정을 왜곡하고 기업의 수익성을 갉아먹는 보이지 않는 장애물, '원가 왜곡'을 다루고자 합니다.
제조 기업에서 생산되는 제품들의 부정확한 원가 정보가 기업의 재무는 물론 생각지도 못한 영역까지 치명적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그 위험성을 분석해 보겠습니다.

중견기업 A사, 재무 담당자도 모르게 일어난 일
A사는 연 매출 500억 원 규모의 식품 제조업체입니다. 매월 수백 개의 제품을 생산하고 다양한 유통 채널을 통해 B2B, B2C 거래를 하는 복잡한 비즈니스 환경 가운데 분투해왔습니다. 업계 평균 이상의 우수 인력과 철두철미한 보고 체계, ERP 시스템까지 모두 갖추고 있었죠.
문제는 A사가 재무제표 작성에 사용되는 단순 표준 원가계산 방식을 의사 결정에 활용해온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중견, 중소기업이 사용하는 이 계산 방식은 제품생산에 소요되는 비용을 단순 평균으로 계산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생산 제품 종류, 공정, 판매 방식 등 여러 요소가 복합될수록 실제 원가 정보를 반영하지 못하고 과대 혹은 과소하게 왜곡할 위험이 있습니다.
원가 왜곡은 A사에도 발생했습니다. 심지어 그 누구도 이 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전략/투자 부문의 중요한 지점에서 잘못된 의사결정이 연속되고, 기업 전반의 지속 가능성을 저해하는 치명적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수익성 높은 사업, 적자 사업으로 잘못 인식하다
경영진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올바른 정보를 바탕으로 미래를 위한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원가 정보가 왜곡되니 A사의 의사결정도 흐트러질 수 밖에 없었죠.
A사의 경영진은 단순 표준 원가계산 방식에 따라, 공장 전체의 공통 경비를 인건비 기준으로 사업부에 할당했습니다. 그런데 인건비가 높은 한 사업부가 공통 경비를 많이 배부받으면서 '적자 사업'으로 판정됐습니다. 결국 경영진은 장기적인 손실을 피하고자 해당 사업부를 철수하는 결정을 내렸죠.
하지만 이 사업부는 사실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었습니다. 철수 결정은 결과적으로 연간 10억 원의 영업이익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인건비와 무관한 공통간접비용을 임의로 배부한 탓에 이 같은 판단 미스로 이어진 것이죠.
불필요한 외주 비용 증가
또한 A사는 외주 가공 여부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원가 산정에 적용하지 말아야 하는 고정비 등을 포함해 원가를 과대 계상했습니다. 이로 인해 내부 생산보다 외주가 더 저렴하다는 잘못된 결론을 내렸고, 결과적으로 연간 약 2억 원의 불필요한 외주 비용이 발생했습니다.
앞서 A사에게 일어난 이슈들은 원가 정보가 정확하지 않을 때 얼마나 큰 재무적 손실과 전략적 기회 상실을 초래하는지 보여줍니다. 이 뿐만이 아닙니다. 원가 왜곡은 거래처와의 관계에도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손실 고객을 우량 고객으로 오인
고객사도 제품과 마찬가지로 자원 소모에 차이가 발생합니다. 하지만 A사는 이러한 차이를 무시하고 단순 평균을 적용하면서, 고객사별 수익성을 잘못 판단하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실제로는 손실을 내는 고객을 '우량 고객'으로 오인해 거래를 확대하거나, 반대로 수익성이 좋은 고객에게 가격을 인상하거나 거래를 축소하는 오류로 이어졌죠. 그 결과, 매출은 증가했지만 이익은 오히려 하락하는 기이한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생산성 관리 부재
A사는 재무 보고용 결산 자료와 제한적인 표준 원가만 관리했기 때문에, 현장의 생산성 문제로 일어나는 비용 증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생산팀별로 15% 이상의 생산성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 월간 1~2억 원 규모의 자재 손실이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현실조차 인지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생산 현장에서 일어나는 운영 효율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 계산한 원가로 의사 결정을 하면서, 모든 원가는 결국 제품과 고객에게 전가되었고, 수익성 문제는 영업 부서를 압박하는 수단이 됐습니다.

ERP는 있었지만, 실질적 자료 수준은…
A사의 재무부서는 ERP와 엑셀로 원가와 수익성을 계산했습니다. 그러나 이 데이터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원인을 파악하기에는 자료 수준이 너무 단순했죠. 전월 대비 영업이익 증감의 원인을 거래처, 제품, 부서 수준에서 파악하지 못했고, 결국 경영진은 감각이나 제한된 정보에 의존해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데이터 결산에 시간이 오래 걸려 최종 보고 시점에는 이미 상황이 변해버리는 정보의 적시성 부족 문제도 컸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정보의 신뢰성을 떨어뜨려 조직의 실행력을 낮추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부서 성과 왜곡, 사내 정치 심화의 악순환으로
A사는 재무자료에만 의존한 결과 각 부서의 정확한 성과를 구분할 수 없었습니다. 원가 및 수익성 정보가 왜곡되어 실제 성과와 평가 결과가 불일치하자, 성과를 낸 직원들의 불만이 커졌고, 경영진도 성과를 구분할 수 없어 보상에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하게 됐습니다.
성과평가가 정확한 지표가 아닌 주관적 평가에 근거해 운영되니 관계 중심의 평가를 부각시켰고, 결국 사내 정치와 책임 회피 문화를 조장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습니다.

‘재무회계’가 아닌 '관리회계'로 판단해야
A사에게 닥친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재무회계와 관리회계의 역할을 혼동한 데 있습니다.
재무회계는 투자자, 채권자, 세무서 등 외부에 보고하기 위한 공식적인 자료로, 법적 의무에 따라 작성됩니다. 반면 관리회계는 경영진, 관리자, 실무자가 매일, 매주, 매월 의사결정, 계획 수립, 성과 관리에 사용하는 내부 관리 목적의 자료입니다.
A사는 외부 보고용인 재무회계 시스템을 내부 의사결정에 그대로 활용했기에, 복잡한 비즈니스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기업의 진정한 경쟁력은 바로 이 관리회계를 통해 확보할 수 있습니다. 관리회계는 재무 데이터뿐만 아니라 생산 프로세스, 활동 및 자원 투입, 물류, 판매 데이터 등 비재무 데이터를 통합적으로 활용하여 원가를 측정하고 분석합니다.
특히, 최근에는 기존의 활동기준원가계산(ABC)의 복잡성을 개선한 TDABC(Time-Driven Activity-Based Costing) 모델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 모델은 자원의 시간당 비용에 활동 소요 시간을 곱해 원가를 계산하기 때문에 , 활동을 세밀하게 정의할 필요 없이 단순하고 쉽게 운영할 수 있습니다. 또한, ERP 시스템과 쉽게 연동되어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고객별, 제품별 수익성을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습니다.
앞서 평균 이상의 관리 체계를 갖췄다 자부하는 A사조차도 파악하지 못한 손실이 있었고, 이는 기업의 성장을 갉아먹는 치명적인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ERP 시스템조차 부재한 대부분의 중소기업이라면 더욱 예외일 수 없습니다.
이제, 더 이상 눈에 보이지 않는 손실에 발목 잡히지 마십시오. 정확한 데이터와 관리회계를 기반으로 한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기업의 경쟁력을 회복하고, 모두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루는 확실한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