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aylro 창업기 #1] "어디서 벌고 까먹는지 알 수 없다" 중소 제조기업에서 겪은 첫 번째 문제
"어디서 벌고 까먹는지 알 수 없다" 중소 제조기업 경영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답답함입니다. 저자는 현장에서 기본적인 재고수불조차 되지 않고, 감에 의존해 자금 계획을 뒤집는 구조적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말로 하는 설득 대신 숫자로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경영진의 습관을 바꾸고 월 2.5억 적자 기업을 흑자로 반전시킨 실질적인 솔루션을 만나보세요.
매출은 나쁘지 않은데 이익이 남지 않는다. 어디서 새는지 짚어내고 싶지만, 그걸 보여주는 정보가 없다. 시스템을 도입해봤지만 입력할 인력이 부족하고, 힘들게 입력해도 경영 판단에 쓸 수 있는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직원들은 바쁘지만, 그 바쁨이 회사의 수익으로 이어지는지는 알 수 없다.
중소 제조기업의 경영진이라면 한 번쯤 이런 상황에 놓여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 문제를 밖에서 관찰한 것이 아니라, 안에서 직접 겪었다. 그리고 그 경험이 지금 내가 하는 일의 시작이 되었다.
지금 나는 중소 제조기업을 위한 원가관리 및 수익성 분석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이를 서비스로 제공하고 있다. 고객사들은 매출 70억에서 1,000억 규모의 제조기업들로, 도입 후 이탈 없이 솔루션을 이용하고 있다. 도입 전 만성 적자에 빠져 있던 기업이 흑자로 돌아서거나, 감에 의존하던 의사결정이 숫자 기반으로 바뀌는 과정을 여러 차례 봤다.
"어디서 벌고 까먹는지 알 수 없다"
나는 회사의 감사팀에서 일을 시작해, 조직과 계열회사의 감사와 재무 관련 업무를 해왔다. 30대 중반, 그런 내가 회사에서 진행한 연매출 300억이 안 되는 중소 제조기업의 M&A 업무를 맡게 되었다. 본사는 피인수기업에 자사의 ERP를 구축하기 위해 프로젝트팀 5명을 3개월간 투입했다. 손익결산과 재무정보 제공이 목적이었으나, 제품과 공정이 많은 이 회사에서 ERP는 끝내 자리잡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친분이 생긴 피인수기업의 경영진에게 손실의 원인을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단순했다. "어디서 벌고 까먹는지 알 수 없다."
이 말이 계기가 되었다. 나는 다품종 제조업의 수익성을 분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한 달간 ERP 시스템과 접근 방법을 연구한 뒤, 본사 CFO에게 피인수기업의 수익성 분석 프로젝트 계획을 보고했다. CFO는 ERP 도입이 난항을 겪고 있던 상황이라 이를 허락했다. 그렇게 나는 수익성 관리 프로젝트를 맡으면서, 동시에 그 회사의 자금관리를 본사에 보고하고 통제하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초기 분위기는 예상보다 싸늘했다. 재무상황이 좋지 않아 인수된 기업인데, 본사에서 온 젊은 직원이 자금 지출을 관리하겠다고 하니 기존 경영진과 관리자들이 반길 리 없었다.
하지만 내게는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현장에 들어가 보니 기본적인 재고수불관리가 되지 않고 있었다. 엑셀에 생산실적을 기록하고는 있었지만, 그 정보가 다른 재고정보와 맞는지는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자금계획은 내일을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자주 바뀌었고, 그때마다 실무자들은 이미 처리한 일을 다시 해야 했다.
혼란스러웠다. 매월 반복되는 업무조차 정해진 약속이나 규칙이 없었다. 경영진이 자금 지출을 그때그때 직접 바꾸고, 그 아래에서 직원들은 바뀐 지시에 맞춰 같은 일을 묵묵히 다시 처리했다. 아무도 이것을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밤늦게까지 남아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오늘 내가 한 일 중에 가치를 만든 것이 하나라도 있었나 생각해보면 답이 없었다. 이 상태를 그대로 두고는 나아지지 않는다는 건 분명했다.
돌이켜보면, 많은 중소기업의 비효율은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규칙이 없으면 판단이 매번 달라지고, 판단이 달라지면 실무는 반복된다. 이 반복을 줄이는 것이 출발점이었다.
수익성 분석보다 먼저, 자금관리
그래서 원래 맡은 수익성 분석에 앞서, 가장 손이 많이 가는 비효율부터 줄이기로 했다. 첫 번째로 손댄 것은 자금관리였다.
내부적으로 자금계획을 보고하는 양식은 있었다. 하지만 그 양식에는 지급 일정을 변경했을 때 앞으로 어떤 영향이 미치는지까지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경영진은 본인의 판단에 따라 일정을 바꿨다. 처음에는 한두 번의 조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회사는 손실이 장기화되면서 현금이 말라 있었다.
번 돈보다 쓴 돈이 많아지면서 자금이 부족해졌고, 부족한 자금을 돌리기 위해 경영진의 즉흥적인 일정 변경 횟수는 점점 늘었다. 자금담당자는 업체별로 지급 일정을 재조율하는 일이 일상이 되었고, 구매담당자는 거래처에 변경된 일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회사의 신뢰 비용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무도 따지지 않았다. 본사 CFO 역시 이런 비계획적인 자금 변동에 불만이 있었다.
나는 이것을 말로 설명하는 대신, 보여주기로 했다. 구글 스프레드시트의 공동작업 기능을 활용해, 자금/구매/영업 관리자가 함께 쓰는 90일 현금흐름 파일을 만들었다. 매출 입금 시점과 공급업체 지급 일정을 한곳에 정리해서, 향후 석 달간 현금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한눈에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기존 보고 양식과의 차이는, 지급 일정을 하나 바꾸면 그 변경이 이후의 잔액 흐름과 다른 업체들의 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까지 보인다는 점이었다.
경영진이 일정 변경을 지시할 때, 이 시트 위에서 그 결과를 보여주었다. 처음부터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기존에 본인이 결정하던 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달가울 리 없었지만, 나도 본사에 자금계획이 변동되는 것을 보고하는 것이 싫었다, 초기에는 이를 무시하고 기존 방식대로 처리되는 경우도 있었다. 시트에서 예측한 대로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몇 차례 경험한 뒤에야, 변경 전에 시트를 먼저 확인하는 습관이 경영진에게도 생기기 시작했다.
자금 지급의 핵심은 상대방의 신뢰와 직접 연결된다는 점이다. 약속을 미루거나 어기면 신뢰가 흔들리고, 이것이 반복되면 거래 자체가 중단된다. 이 회사는 이미 그런 일을 여러 번 겪고 있었고, 그 원인 중 하나가 현금흐름을 충분히 계획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런 부분에서 90일짜리 현금흐름 시트는 이 문지를 바꿨다. 경영진에게는 매번 자금 집행에 신경 써야 하는 부담을 덜어주었고, 거래처에는 정확한 시점에 자금이 지급될 것을 알려줄 수 있었다. 자금관리 업무는 계획과 실적이 일치하는 업무로 바뀌었고, 이후 자금을 집행하는 날짜를 월 2회로 정리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정착했다.
여기서 얻은 경험이 하나 있다. 경영진의 행동을 바꾸려면 말로 설득하는 것보다, 본인의 결정이 만드는 결과를 눈으로 보여주는 것이 훨씬 빠르다. 이것은 이후 모든 개선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확인한 원칙이기도 하다.
기존 시스템에 답이 없다면
자금이 잡히자, 다음 문제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 앞서 본사에서 파견된 ERP 프로젝트 팀이 3개월간 투입하고도 자리잡지 못한 ERP가 왜 실패했는지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ERP는 기본적으로 정보를 입력하고 조회하는 도구다. 수익성이나 원가 분석 기능이 있다 해도, 대부분 재무보고 목적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주 목적으로 사용된다. 입력해야 할 정보는 많은데, 실제 경영진이 의사결정에 쓸 수 있는 정보는 나오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 물론 글로벌 기업의 ERP의 관리회계 모듈을 기업에 맞도록 개발하면 되지만 이는 아주 높은 비용을 요구하기에 중소기업에서는 사용하기에는 어렵다.
여기에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본사는 단일 제품을 대량생산하는 규모의 경제가 가능한 사업이었고, 각 부서마다 시스템을 운영할 전담 인원이 별도로 있었다. 그 환경에서 만들어진 ERP를, 다품종 소량생산에 현장관리자들로만 구성된 중소기업에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입력해야 할 항목의 수는 제품과 공정이 많은 만큼 본사보다 오히려 많았지만, 그것을 입력할 인력은 없었다. 입력은 현장의 몫이었고, 입력한 사람도 그 결과를 활용하지 못했다. 시스템 자체의 결함이라기보다, 본사의 환경에서 작동하는 시스템을 전혀 다른 현실에 옮겨놓은 데서 오는 간극이었다.
많은 중소기업이 ERP 도입 후 비슷한 상황을 겪는다. IT시스템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 시스템이 전제하는 운영 환경과 자사의 현실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간극을 인식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첫 단계였다.
그렇다면 이 현실에 맞는 방법을 직접 찾아야 했다. 나는 중소기업의 현실에서 실행 가능한 방법들을 하나씩 연구하고 적용해나갔다. 적은 입력으로도 재고흐름을 추적할 수 있는 방법, 비용을 변동비와 고정비로 구분해 제품별 수익성을 파악하는 방법,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마감 체계를 현장에 정착시키는 방법. 하나를 적용하면 다음 문제가 보였고, 그것을 또 해결하면 그다음이 보였다. 쉬운 과정은 아니었지만, 결과가 나올수록 현장의 태도도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의 나는 소프트웨어를 직접 만들겠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다만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려 했을 뿐이다. 하지만 이때 시행착오를 거치며 쌓은 경험과 방법론이, 훗날 현재 솔루션의 근간이 되었다.
월 2.5억 적자 기업, 6개월 만에 흑자로
이렇게 하나씩 자리잡은 것들이 모이자, 숫자가 바뀌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초기에 나를 가장 껄끄러워하던 대표님이다. 자금관리 시트를 무시하던 경영진이 숫자를 먼저 확인하게 되고, 작은 변화들이 실제 결과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분의 태도가 달라졌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내가 무언가를 바꾸려 할 때 현장의 맥락을 알려주고, 관리자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조력자가 되어 있었다. 그분의 지원이 없었다면, 이후의 변화는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재고수불이 보이고, 비용 구조가 정리되면서 제품과 고객별 수익성이 드러났다. "어디서 벌고 까먹는지 알 수 없다"던 그 문제에 답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매월 2.5억 원의 적자를 내던 기업은 6개월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이후 수익성이 확보된 기반 위에서 매출이 성장하며, 대표님은 본인이 원하는 조건으로 회사를 exit 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이 시리즈를 통해, 이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 다음 편에서는 ERP 없이 적은 입력만으로 재고수불을 관리한 방법, 그리고 그것이 가능했던 원리를 다룬다.
지금 비슷한 상황에 있는 중소기업의 실무자와 경영진에게, 이 기록이 자사의 문제를 들여다보는 시작점이 되기를 바란다.
✍️ 필자 소개
Taylro 대표, 국제 공인관리회계사(CMA), 국제공인내부감사사(CIA)